‘동북노가(東北老家)’라는 간판에서 음식 냄새를 맡긴 어려웠다. 하지만 중국인들에겐 이미 익숙한 식당이고, 더 나아가 아지트였다.

광산구 우산동 흑석사거리 인근에 이 ‘노가’(老家)가 있다. 주인장은 이나 씨. 그에 따르면 ‘노가’는 ‘옛 집’이라는 의미. 동북성 출신의 이 씨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았다.

이 씨는 1995년에 한국에 왔다. 다들 그렇듯이 “돈을 벌기 위해서”였다.

중국에서의 그의 삶은 참으로 고달팠다. 13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공부도, 생활도 뜻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던 것. 그때 한국은 ‘기회의 땅’으로 보였다.

그래서 결행했지만, 현실은 많이 달랐다. 먹고 살기 위해,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 안해본 것 없이 다 했다.

“먼지 풀풀 날리는 미싱공장에서 죽 먹듯이 밤샘했구요. 파출부 노릇할 땐 일 없으면 주인의 (애완용) 강아지 목욕을 시키기도 했으니까요.”

건설노동자로 일하는 남편은 공사 현장 따라 전국을 떠돌았으니, 이 씨 역시 한국 땅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했다.


그렇게 10여 년 이상을 살다보니 안정적인 거처가 절실했다.

중국에 남아 있는 두 자녀가 대학에 진학하고 나자 정착 욕구는 더 간절해졌다. “작년에 아들이 대학에 떨어지면 중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어요. 애들이 크는 동안 한 번도 곁에 있어주지 못해 미안했거든요. 이제라도 힘들고 어려울 때 곁에 있어주자고 생각했죠.” 그런데 그들이 대학생이 되고 보니 상황은 또 달라졌다.

학비로 더 많은 돈이 필요하게 된 것. “2~3년 더 한국에서 돈 벌고 가자”고, 남편과 함께 궤도를 수정했다.

그래서 열게 된 것이 음식점이다.

중국인들을 위한 식당인데,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중화요릿집 메뉴는 찾을 수 없다.

하지만 이 집은 음식점이라기보다 사랑방. 한국에 온 지 오래된 이들부터, 갓 들어온 학생까지, 외롭고 힘들 때면 찾는 곳이다.

한국에 능숙하고 한국어에 능란한 이 씨가 고민 해결사가 돼 있기 때문이다.

“엊그제 동포 한 명이 교통사고를 당해 한 대학병원 응급실로 실려갔어요. 한 밤중에 갑자기 전화가 걸려 왔더라구요. 그렇게 큰 병원에 중국어하는 사람이 없다니요? 그게 말이 됩니까?”

결국 이 씨가 ‘다리’가 돼 의사와 환자간 대화가 이뤄졌다. 중국에 있는 환자 가족이 입국할 수 있도록 비자를 발급하는 등의 업무 또한 이 씨의 몫이 됐다.

‘동북노가’를 자처한 이 씨의 숙명이기도 할 터. 하여 그의 소망은 “힘이 닿는 한 많은 이들을 도와주고 싶다”는 것.

그는 구체적으로 ‘아빠가 없는 가정 형편 때문에 학업을 지속할 수 없는’ 아이 한 명을 후원, 대학까지 공부시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. 과거 그와 같은 처지로 인해 누군가가 겪어야 할 아픔을 보듬겠다는 의지다. 문의 062-961-6998.

채정희 기자 goodi@gjdream.com